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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픽션들> 중 "바빌로니아의 복권"

감상, 이것저것


줄거리 


고대 바빌론에서 총독과 노예의 신분을 넘나들며, 제사장의 직무와 사형수의 운명까지 

짊어져 본 한 사내의 해설로 진행되는 이야기. 

그는 자신의 우여곡절 넘치는 삶이 바빌론의 한 비밀스러운 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 제도는 다름아닌 "복권"으로, 평민들이 즐기는 놀이에서 기인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로또와 같이 승패를 뽑은 사람에게 거액의 상금을 지급하는 유희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따분해 하는 시민들의 반응에 "회사"로 알려진 운영자들은 

당첨되면 도리어 벌금을 물어야 하는 '불운의 패'을 추가하였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으로, 복권을 사지 않는 사람들은 겁쟁이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때부터 복권 제도는 여러가지 변화를 맞습니다. 



1. 불운의 패에는 벌금 액수 대신, 구류 기간이 적히기 시작. 

벌금을 물지 않으려는 불운의 당첨자들이 차선으로 옥살이를 선택하면서 

회사는 법적, 종교적 권력을 손에 쥐게 됩니다. 


2. 행운의 패에는 상금 대신, 의원으로의 진급과 같이 권력적 특혜가 적히기 시작. 

균형을 중시하는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옥살이, 즉 자유의 박탈이 '불행'이라면, 

'행운'의 패는 반드시 행복이라곤 볼 수 없는 금전적 이득보다 

더 큰 상을 가져다 주어야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3. 경제적 여유가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 즐기던 복권 놀이가 전 계급으로 확대되고, 

비밀리에 진행되는 국가 스케일의 비영리 사업이 되었습니다. 

가난한 하층민들이 자신들도 복권에 참여할 권리를 주장하며 들고 일어난 결과. 

회사는 공권력을 흡수하여 엄청난 조직으로 거듭나고, 

시민들은 이때부터 의지와 관계없이 추첨에 참여하게 됩니다. 


4. 불행의 패에 구류기간 뿐만이 아닌, 더 큰 형벌을 추가. 

신체 일부를 자르거나, 온갖 방법을 통한 명예 훼손, 

사형까지 가능하게 됩니다. 


5. 회사가 스스로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복권 제도를 이용하게 되었다는 암시가 나옵니다. 

회사는 정갈한 계획 끝에 무려 서른, 마흔 번에 달하는 추첨 끝에 

어느 주점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혹은 한 인물의 신격화와 같은 결과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시민들은 회사가 운명에 개입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보다, 

순수 운 덕에 좋은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는 쪽이 맘편하겠죠. 

회사는 이러한 믿음을 굳히고 동시에 추첨이 불러오는 희망과 절망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마술과 스파이까지 이용합니다. 


6. 안 그래도 정교했던 복권 시스템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록  복잡해집니다. 

누군가 불행의 패를 뽑아 죽게 되었다면, 두 번째 추첨에서 사형 집행인들을 추립니다. 

세 번째에선 최종 집행인을 선정하고, 비슷하게 이어지는 몇 차례의 추첨을 통해 

죽을 운명에 처한 사람은 갑자기 상을 받거나,

아니면 반대로 고통스러운 고문을 동반한 죽임을 당할 지도 모릅니다. 

말 그대로 혼돈 그 자체인 시스템. 

하나의 추첨 결과는 또 다른 결과로 이어지고, 사실상 추첨은 무한히 계속됩니다! 




7. 사람의 운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는 추첨 결과 생성. 

유프라테스 강에 사파이어를 던지거나, 백 년마다 해변에 모래 한 알을 더하라는 

의미불명한 지령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행동들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죠.  


8. 복권이 바빌로니아의 현실을 완전히 잠식

술을 샀다면 통 안에서 추첨 결과를 충실하게 따른 사람이 넣어둔 

뱀을 발견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필기자들 역시 회사의 지령대로 책을 쓸 때 내용을 빠뜨리거나 왜곡합니다. 

잠들어 있던 사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옆에서 자는 여자의 목을 조르는 것도 

회사의 계획일지도 모릅니다. 

역사도 온전히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었으며, 

특히 회사의 역사는 허구로 점철되어 있다고 합니다. 


9. 회사의 존재 여부가 불확실해집니다. 

뭐 원래부터 베일에 쌓인 집단이었지만...허구라는 소문도 있는 반면, 

회사는 언제나 존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회사는 막강한 힘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새의 울음소리처럼 아주 작은 것들에만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회사가 있던 말던, 바빌론은 결국 운에 지배되는 무한한 게임이기 때문에 

크게 상관 없다고 합니다. 


해석


1. 복권 제도와 회사는 신에 대한 알레고리


평범한 인간의 눈에 신, 혹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마련한 계획은 보이지도 않고, 

보인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상상만 해도 무서운 일이죠. 

이와 같이 '회사'가 복권을 이용해 주도하는 계획들은 아주 비밀스럽고 복잡합니다. 

나중엔 그 존재감조차 희미해질 정도로 말이죠. 

마지막에 회사의 존재 여부를 두고 생겨난 여러 가지 의견들은 

신이 존재하는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두 가지 선택을 대표합니다. 

첫째는 신과 그 전지전능함을 믿는 것이고, 둘째는 아예 그 두가지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2. 회사는 종교를 상징한다? 


해설자에 따르면 회사는 엄청난 힘과 영향을 행사할 수 있지만, 

그렇게까지 되는 과정에서 대중의 요구에 따라 많은 변화를 거칩니다. 

운영 방식을 통째로 바꾸는 계기도 

대중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시도에서 나온 것이고요. 

이런 면에서 회사는 결국 사람들이 창조한, 사람들을 위한 집단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처음에는 무해한 목적으로 시작한 일이 

점차 뒤틀린 방향으로 간다는 점도 생각해볼 만합니다.



3. 신의 존재와는 상관없이, 우연과 혼돈은 결국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


현실을 정의하는 질서들이 우연과 혼돈으로 이루어져 것은 모순적인 말이지만, 

이야기 속에서도, 실제 우리의 삶에서도 사실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무질서의 세계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할 뿐만이 아니라, 

슬프게 하기도 합니다. 

누군가 컴퓨터 앞에 편히 앉아서 글을 작성할 동안, 

다른 누군가는 당장 먹을 것이 없어 죽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무도 이렇게 태어나길 선택하지 않았지만, 

우연은 망설이는 우리를 대신해 운명의 가지를 쳐 나갑니다.  


4. 의문점들


회사와 복권은 바빌로니아 전체의 작품이었을까? 

아니면 대중을 뜻대로 하기 위한 소수의 계획이었을까?



배경과 여담


1941년에 문학잡지 <Sur>에 처음 공개되었으며, 

1944년에 <픽션들>에 수록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유와 연관시킨 해석도 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복권이 진정한 복권으로 거듭난 것은 벌칙을 추가시킨 시점이었죠. 

트릭이 '무조건' 성공하는 서커스나 마술과는 달리, 

스포츠 게임에서는 무조건 승자와 패자가 결정납니다. 

무승부라 해도 항상 더 좋은 경기를 보여주는 팀이 있기 마련. 

또한, 참여자의 실력을 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줍니다. 

복권도 비슷한 어필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공하고 몰락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서사의 부여를 통해 

각자 가지고 있는 정의를 구현하는 일은, 

분명 많은 이들을 복권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최대한으로 누릴 수 있게 허락했을 것입니다. 




보르헤스의 다른 이야기들, 특히 <바벨의 도서관>에서 이런 아이디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자주 나오는 미로는 혼돈으로 가득한 세계와, 

그곳에서 길 - 혹은 정체성과 개성- 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네이버 웹툰 쿠베라 3부 최신연재분까지의 감상 (스포일러 주의)

감상, 이것저것

쿠베라는 흥미진진할 때와 아닐 때의 차이가 좀 많이 나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봤던 것 같은데...

팬카페에서 활동까지 하면서 열렬하게 좋아하던 몇 안되는 웹툰 중 하나였습니다.

인도신화 모티브와 작가님이 신경 쓰신 게 정말 많이 보이는 설정이 너무 좋았습니다,

캐릭터는 말할 것도 없고요.

(아홉 명의 주연 캐릭터 모두 한 번씩 돌아가며 좋아해봤습니다).



(3부 예고편 보러가기)



시간이 지나서 다시 감상하니 그땐 보이지 않던 문제점들이 보입니다.

페이스 조절, 가끔 불안불안한 작화, 거대한 스케일을 받쳐주기엔 아쉬운 연출 등등.

이 있지만 사실 쿠베라는 현재 연재중인 네이버 웹툰 전체를 통틀어

상위권에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클리셰 범벅에 댓글란의 독자들의 감상평이 좌지우지하는 스토리,

아마추어보다 못한 그림실력이 만나 탄생하는

퀄 떨어지는 양산형 작품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고요.



3부를 보면서 (지난주에 나온 3부 70화)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1, 2부때 계속 봐왔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변화한 캐릭터들입니다.

주연 캐릭터별로 간단하게 감상을 남기자면...


간다르바

눈뜨고 못볼 장면 (...)



반 농담으로, 한때 이런 캐릭터를 좋아했다는 게 수치스럽습니다.

네웹, 아니 웹툰 역사계 (솔직히 모든 장르의 창작물을 다 합쳐도 가능할 듯 싶습니다)

통틀어 가장 추하고 역겨운 캐릭터성을 가진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요즘 안나오니 재미가 떨어진 느낌이네요...떨어질 정도 없지만 욕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리즈

요즘 미모가 리즈를 찍고 있는 건 좋은데...

1부부터 지금까지 구르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든 모양이라 안타깝습니다.



할머니 떡밥, 2부 반영의 호수 떡밥이 남아있는데도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네요.

1부 때 너무나 좋아했던 캐릭터였는데

이젠 딱히 라나와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하지가…



사가라, 쿠베라

각각 1부의 <불꽃이 내리는 밤>, <황금의 기사>챕터를 거치면서

굉장히 좋아하게 된 캐릭터들인데 비중이 없어서 슬픕니다.



아샤

지금 나와봤자 임팩트가 있을까 싶습니다.

리즈나 브릴리스 앞에서 한번 더 패드립치면 자기 목숨이 위험할 듯 싶은데,

재등장할 땐 파워업해서 나오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루나

철들지 않는 이상 호감이 많이 갈 것 같진 않습니다.

스토리상 필멸의 눈을 써서 성장할 것 같은데 그때 모습이 기대되긴 합니다.



아그니

옆에서 깐족대는 찬드라를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아그니.

브릴리스와의 과거가 밝혀지고 난 후에

1, 2부에서의 짜잘한 대사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데...

작가님 기획력이 정말 놀라운 부분이었습니다.

살아온 시간 대비 인성이 많이 부족한 오선신들

(여기엔 ‘해탈'과 관련해 아직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은 떡밥이 있는 듯하지만)

의 희망이기도 합니다.


브릴리스

1, 2부때완 완전 다른 캐릭터가 되버린 듯한 브릴리스.

분명 간다르바에게 사이다를 날리는 것도 좋고,

어머니를 실력적으로 따라잡은 것도 좋은데 <불꽃이 내리는 밤>

챕터에서의 약하지만 책임감있는 캐릭터도 너무 좋았어서 아쉽기도 하네요ㅠㅠ


유타

2부에 비해 굉장히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서 정말 좋습니다.

우주민폐 엄마 때문에 고생이 너무 심하네요.

아마 리즈의 옆에 끝까지 함께하는 이는 유타가 아닐까요?



사실 지금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셰스입니다.

3부와서 갑자기 너무 잘생겨보여서 다시 1, 2부를 봤더니

그냥 그동안 제가 눈치를 못챈거였습니다.

인성이 없는 캐릭터가 난무하는 이 만화에서 사하, 시에라 등과 함께 인격자 포지션!

게다가 성장한계의 이유가 되는 과거 트라우마까지 나와서

옛날보다 훨씬 입체적인 캐릭터가 되가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한동안 분량이 없을 것 같아 슬퍼요ㅠㅠ



여튼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되는 쿠베라입니다.

주연들의 반이라도 행복한 결말은 맞을 수 있을까요?



+3부에서 가장 재밌었던 화는 단연 58화. 마지막 반전은 정말 예상 못하고 있었습니다.

(1부 타라카가 더 예쁘다고 생각하는 건 저뿐인가요...ㅠㅠ물론 지금도 그렇지만)